묘묘님께서 신청해주신 가면라이더 더블의 쇼타로X아키 정부 스파이X반정부 혁명가 AU 글입니다.
정부의 요인이었다가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하는 정부에서 돌아서 혁명가가 되었지만 살해당한 나루미 소우키치와, 그런 아저씨 곁에 있다가 그 이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던 쇼타로.
사회적 혼란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하는 대로 실행하는 것이 옳다는 필립의 말에 설득당하고 정부측에 선 쇼타로는 명령을 받고 아저씨의 딸로서 나루미 소우키치의 죽음 이후 반정부 혁명가로 활동하여 중요 인물로 떠오른 나루미 아키코의 곁에, 그녀를 죽이기 위해 가게 되는데......
"아키코, 할 얘기가 있는데."
"응? 뭔데?"
웬일로 모자를 벗은 채 쇼타로가 먼저 휘적휘적 걸어갔다. 아키코는 아지트의 뒤편으로 가는 길을 타고 폴짝폴짝 뒤를 따라갔다. 처음 만났던 때에 쇼타로가 여중생인 줄 알았다고 놀렸던 것처럼 아키코는 여전히 소녀 같았지만, 그 외모만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강단과 의지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저씨의 딸이고, 혁명을 꿈꿀 수 있었겠지.'
착잡한 표정을 감출 도구가 없다. 쇼타로의 뒤에서 아키코는 그가 꺼내려는 화제를 짐작해보았다. 역시 얼마 전에 테루이쪽과 벌였던 언쟁 탓일까? 반정부 활동쯤 되는 위험한 일이면 많은 이들의 의견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혁명가뿐 아니라 예상 밖의 민간인 사상자가 대규모로 나온 사건에서 아키코는 두 번 다시 이런 일은 일어나선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거기에는 많은 이들이 동의했다. 다만 누구도 이렇게 될 거라고 의도하지는 않았으므로 우리들의 탓인지, 우리들을 이렇게 몰아간 정부의 탓인지에 대해서 의견이 갈렸다. 아키코는 이러한 사태의 재발 방지와 더 나아가서 사람들에게 가능한 만큼 피해 보상을 해줘야한다고,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우리가 혁명을 하는 의미가 없다고까지 말했다.
혁명파 내부에서 아키코의 영향력은 상당했지만 반발은 있을 만한 의견이었다. 행동하는 데에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 아키코다웠지만, 그 자리에서 쇼타로는 그렇게만은 할 수 없는 현실을 지적하는 테루이와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겠다는 아키코 사이에서 중재를 했었다. 그 때의 쇼타로는 묘하게 평소보다 말 수가 적고 가라앉아있어서, 의견이 있어도 말하지 않고 아껴둔 것 같다고 아키코는 느꼈었다.
"여기면 돼?"
"그래."
적당히 걸터앉은 아키코의 곁에서 쇼타로가 무거운 표정을 고수했다. 아키코가 그런 쇼타로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면서 무게잡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다.
"무슨 얘기길래 계속 그런 얼굴이야?"
"그냥 뒤숭숭한 일도 좀 있었고, 상담하고 싶은 것도 있고."
"오, 쇼타로가 나한테 상담? 드디어 이 누님에게 기댈 마음이 생긴 거야?"
아키코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쇼타로도 하하,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누님은 무슨, 그 꼴로 어디 가서 내가 이 동네 리더요~ 해도 장난인 줄 알겠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상담하고 싶다는 건 바로 여기 계신 하프보일드씨라구. 이 아키코가 좀 믿음직하지?"
지나치게 믿음직해서 문제지. 머리에 모자를 얹은 쇼타로가 조심스럽게 말을 골랐다.
"다쳤던 데는 괜찮아?"
"다 나은 지가 언젠데!"
"저번에 암호문이 발각된 거, 새 암호문 짜는 거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었나?"
"그건 류군이 혼자 다 해버렸더라구."
"창고 관리도 문제 없었나?"
"아무 일도 없답니다! 자, 뒤숭숭한 일의 확인이 끝났으면 이제 상담하고 싶은 내용이 뭔지 말해줄래 쇼타로군?"
아키코가 빨리 본론을 내놓으라고 입술을 쭉 내밀며 투정부리듯 말을 던졌다. 오늘 쇼타로는 좀 이상했다. 방금 전에 물어본 것들도 사실 굳이 할 말이 있다고 따로 불러내지 않아도 되는 이야기들이었다. 상담이라는 게 뭔지 들어야만 할 예감이 들어서 아키코는 쇼타로가 말하지 않으려고 하면 추궁이라도 해볼까 싶었지만, 쇼타로가 곧 입을 열었다.
"이대로…… 괜찮을까 싶어서."
"뭐라고?"
"나도, 너도, 이 혁명도 이대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불안해졌다고."
아키코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일어났다. 만난 이래 쇼타로가 이런 말을 꺼낸 것은 처음이었다. 아키코가 혁명 활동을 시작한지는 그리 오래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혁명가 나루미 소우키치의 딸, 나루미 아키코라는 이름이 알려지고 아버지의 이름에 못지 않은 활동이 나타나면서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모였다. 쇼타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악덕 정부에게 돌아가시기 전의 아버지와 아는 사이였다는 쇼타로는 아키코가 잘 모르는 부분의 나루미 소우키치를 알았고, 덕분에 쇼타로와 금방 친해질 수 있었다. 아버지처럼 모자를 쓴 그는 혁명에 동참하면서 과거도 속내도 잘 말해주지는 않는 주제에 평소엔 허술하고 어수룩한 구석이 있었다. 하드보일드한 나루미 소우키치를 따라가려고 하지만 반밖에 따라가지 못해서 하프보일드, 아키코는 호감을 담아 쇼타로를 그렇게 불렀다.
적어도 그 하프보일드 안에, 나루미 소우키치의 뒤를 따라 혁명을 성공시키고 사람들을 해방시킨다는 의지만은 굳건할 거라고 아키코는 믿었다. 하지만 쇼타로도 사람이니 때론 불안할 수도 있는 일이겠지. 이런 상담이라면 있을 법했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을 리도 없었고 말이었다.
"최근에 여러 가지 많긴 했지. 죽은 사람도 끌려간 사람도 있고."
"……어."
"그래서 더 포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도 때론 불안해. 정말 성공할 수 있을까, 아버지도 힘들어하셨던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있어.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있을 때엔 이런 말 못하겠지만. 쇼타로도 그래서 나한테 말하고 싶었던 거지?"
작은 불안은 때로 큰 파문이 된다.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나루미 아키코가 하는 말 한 마디가 누군가를 무슨 길로 이끌지 모르는 일이다. 자신의 입장을 자각하고 있는 아키코에게는 쇼타로가 예전에 아저씨에게서 보았던 카리스마가 비치는 듯했다.
그런 것을 처음 느꼈을 때엔 아저씨가 생각나서 웃었던 쇼타로는, 지금은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아키코는 그걸 쇼타로의 불안이라고 느끼고 말을 계속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아, 저기 물론 무조건적으로 괜찮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잖아. 얼마 후엔 그 계획이 완성될 거고, 시작만 되면 이번에야말로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어. 지금은 때가 아니냐는 말도 있었지만 나는 역시 지금이라고 생각해. 더 미룰 수는 없으니까."
고통 받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고, 언젠가 꿈이 이루어지는 미래. 아키코는 쇼타로와 함께 그곳에 서있는 자신을 상상해보았다. 기뻐서 울 것 같은 표정을 모자로 애써 가리고 있으면, 손을 잡고 잔뜩 놀려주고 싶었다. 그런 상상을 하면 현실에 존재하는 불안들이 조금은 사그라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한 번이라도 상정해보았던 불안이 현실이 되는 순간, 아키코는 꿈에서 벗어나 혁명의 앞에 서있었다.
"그래. 더는…… 미룰 수 없지."
"쇼타로군……?"
차가운 총구는, 그녀가 올려다보면 쇼타로의 눈을 가릴 만한 곳에서 아키코를 노리고 있었다.
아키코의 몸에 숱하게 겪어온 긴장이 깃들었다. 누가 적이고 누가 아군일지 모르는 상황은 무수히 당했다. 동료일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 총구를 겨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믿고 싶었던 사람일 뿐이다.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한번쯤 해봤어."
계획했던 일들에서 예기치 못한 구멍이 눈에 띄면, 혁명의 지도자가 생각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내통하고 있거나, 간첩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고. 어쩌면 회유당한걸지도 모른다. 눈앞의 남자가 어느 쪽인지는 몰라도, 아키코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바로 쏘지 않았다. 아직 이 상황을 멈출 여지는 남아있다는 뜻이었다.
"왜 쏘지 않는 거야? 납치라도 할 셈?"
"넌 아저씨의 딸이니까, 진실 정도는 알려줘도 괜찮겠지."
쇼타로는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아저씨와의 인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점점 썩어가는 정부, 쇼타로에게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라며 혁명가로 돌아서고 살해당한 아저씨, (아키코는 누군지 잘 모르지만) 필립의 제안, 아키코에 대한 의도적인 접근, 그리고.
그래, 나도 알아. 네 곁에서 지켜봤지. 아저씨가 이루려고 했던 뜻, 사람들의 행복, 아저씨와 같이 있던 시간은 길지 않으면서도 점점 아저씨를 닮아가는 너, 그 옆에서 내가 정말로 너와 한 편이 된 것처럼 편안함을 느끼던 나.
하지만 격동의 가운데에는 그 어떤 때보다 많은 피가 흐른다. 멈춰설지 물러날지 결정하는 자들은 피웅덩이 위에서 전진하고 후퇴한다. 자신의 의지로, 혹은 타인의 의지로.
쇼타로는 아직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주동자가 죽은 뒤 밀어붙이는 게 가장 기본적인 제압 방식이지. 나는 너를…… 죽여야 해."
모자의 챙이 이 그늘로 다 가려줄까, 꼴사납기 그지없는 이 얼굴을. 이렇게 반짝반짝 빛나면서 아름다운 세상의 꿈을 실현하려던 이를 잊어버리지 못할 표정을.
네가 하프보일드라고 부르는 나보다 훨씬 아저씨를 닮았을 네가 평소와 하나도 다름없는 얼굴로 선언하면 흔들려버리고 말 것 같았다. 쇼타로는 헛웃음을 삼키느라 애를 썼다.
'아버지랑 아는 사이라고? 정말?'
'제자 비슷한 거였달까…….'
'허풍 아니지?'
쇼타로를 증명해주었던 것은 아저씨가 그에게 남겨주고 간 모자였다. 필립이 보낸 잠입이었지만, 거기서 시작된 인연이었다.
그 뒤로 계속 네 곁에 있었어. 아저씨의 딸이자 내가 언젠가 죽여야할지도 모르는 사람, 그러니 누구보다도 잘 알게 되었다.
네가 언제 어디에 있더라도, 아저씨의 딸이 아니었더라도 너를 만났더라면 나는 네 영혼이 찬란하다고 느꼈을 거다. 이 정체되고 검게 물들어가는 나라에서 결코 꺾이지 않을 너를 내 손으로 꺼뜨려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에.
대답은 쇼타로가 기대한 대로였다. 빈틈을 노려 손목을 치고 쇼타로의 자세를 흔들리게 한 아키코가 뒤로 한 바퀴 물러나 호신용 총을 꺼냈다. 쇼타로는 이번에야말로 허탈하게 웃을 수 있었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한다고 주장하는 아키코에게 쇼타로가 그럼 이거라도 배우라며 가르쳐주었던 호신술이었다.
쇼타로가 총구를 정조준하는 것과 동시에 아키코가 손에 듣 쇠붙이에서 철컥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여기서 죽을 수 없어!"
"그렇겠지."
아키코의 눈에 쇼타로의 냉엄한 얼굴이 들어왔다. 한번도 본 적 없는 표정이었다. 때로 멍하니 먼 곳으로 빨려들어갈 듯한 태도로 쇼타로가 앉아있으면 다가가서 일하라며 등짝을 때린 적이 종종 있었다.
그건 아마 그가 이런 얼굴을 감추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왜…… 이렇게 된 거야?"
아키코는 그를 쉽게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루미 소우키치의 죽음은 아키코에게도 쇼타로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거기부터 갈라져서 온 길이었다. 아키코와 쇼타로가 교차한 지점은 이제 여기서 다시 또 갈라질지도, 나란히 놓일지도 모른다.
쇼타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흔들림없이 뻗은 손끝에는 여전히, 탄환을 품은 권충이 건재했다.
"쇼타로군, 총을 버리고 이쪽으로 와줘. 그러면 아무 일도 없던 걸로 할게. 우린 곧 성공할 수 있어. 체재를 바꾸는 거야, 더 이상 아무런 피도 흐르지 않게."
아저씨의 꿈, 아니, 이제는 네 꿈을 말하는 네가 이렇게 눈부신데.
'쇼타로, 혁명을 한다는 인간들은 언제나 정론을 말해. 하지만 너도 알잖아? 정론은 정론일 뿐이야. 거기에 따르는 부작용은 일단 무시하는 거지. 그러니 그들에게 현혹되지 마.'
네 말도 옳아, 필립. 나는 그렇게 느끼고 여기에 왔어. 하하, 나도 참 줏대가 없어. 하프보일드라고 놀림받아도 이젠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을 거야. 나는 그저…….
"많은 사람들이 울고 있어. 조금이라도 이런 혼란 상황을 빨리 끝내려면 이 길밖에 없어."
"쇼타로군! 아무리 밟아도 이 불씨는 꺼지지 않을 거야!"
아키코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있다. 쇼타로도 알고 있다. 아키코가 죽으면 누군가가 새로이 지도자가 되고, 또 다른 간첩이 죽이러 올지도 모르고, 그렇게 반복되고, 시체 너머에서 누군가의 울음 소리가 들리고.
"나는 더 이상 아무도 울리고 싶지 않아."
나는 너를 만난 이래 계속, 진실과 거짓을 반반씩 말해왔어. 아저씨에 대한 것들은 전부 진실이었고, 나에 대한 것들은 전부 감추었지.
이건 진심이야, 나는 누가 우는 걸 보는 게 지긋지긋해. 이름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남몰래 울던 너를 본 그 순간부터, 더더욱.
쇼타로가 움직였다. 아키코도 누군가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낌새 정도는 알아챌 수 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명중률은 형편없지만 어쩔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보다 결심을 띤 손이 먼저 움직였다.
총성은 거대했다. 조금 전까지야 아무도 오지 않을 곳이었지만 이젠 누군가 달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키코는 몸에 긴장이 풀리며 털썩 쓰러졌다. 스친 상처조차 없었다.
"쇼…… 타로군?"
소리없는 웃음을 지으며 모자를 끌어안고 그 자리에 쓰러진 쇼타로에게 아키코는 총을 내팽개치고 달려갔다. 옷에 점점이 번지기 시작한 핏방울이 눈에 들어왔다. 쇼타로 곁에 떨어진 총은 싸늘하기만 했다, 발사되지 않았으므로.
피가, 검은 옷을 축축이 물들여버리고.
"나…… 이런 거 들은 적 없어!!"
몸 어딘가의 급소를 맞은 듯한 쇼타로의 몸이 물을 먹은 듯이 무겁게 축 늘어졌다. 당황한 채 아키코가 쇼타로를 잡고 흔들자 쇼타로는 눈을 가늘게 떴다.
높게 울리는 목소리에 귀가 아프다. 하지만 사랑스럽다고 생각했다.
"아키…… 코."
"자, 잠깐만 정신 차리고 있어봐. 사람을 불러올 테니까! 다 나으면 백 배 천 배 나한테 빚 갚아……!!"
"넌 정말…… 시끄럽고, 여자로서 매력도 없…… 고, 처음 만났을 때도 덜렁대서 내버려둘 수도 없었는데, 그러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네, 이럴 생각은 없었는데.“
"말 그만 해! 피, 피가."
"……매일 떠드는 걸 보고 있으면 어디서 그런 기운이 나나 싶었지, 모두가 절망적이어도 너 혼자, 멍청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현실이 아무리 어두워보여도, 돌진해버려서 따라가느라 애도 먹었, 고…… 같이 도망치던 중엔, 네 뱃속에서 나는 소리 때문에 들킬 뻔도 하고…….“
지금 하기엔 이상한 소리를 줄줄이 늘어놓는 쇼타로를 보며 아키코는 빽 소리를 질렀다.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네 주변에 사람이…… 늘어날 때마다, 다들 천방지축인 네가 아저씨 딸이라는 걸 반신반의할 때마다 솔직히……나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거든, 이런 왈…… 가닥이, 도대체가 왜, 아저씨 딸이고…… 주동자인지."
아키코의 손 안에 담긴 온기가 곧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쇼타로는 말이 많았고 아키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나 여기 있을게. 가지 말라는 거지? 총소리가 났으니까 누가 올 거야, 그 때까지만 눈 뜨고 있어봐!“
"……그렇지 않았으면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겠지."
그리고 너는 결국 모두가 기대하고 너에게 덧씌운 이미지대로의 사람은 아니었어도, 내가 아는 아저씨의 딸이고 내가 이렇게 이끌려버린 사람이었다.
"……네가 혁명에 발을 들이지 않았더라면, 나…… 와 만날 수…… 없었……을……."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딘가에서 소시민으로 밝게 웃으면서, 천방지축으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곳에서 너와 내가 시간을 공유한 적이 없었더라도 너는 너였을 거야. 너를 만나기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른 사람 같지만.
쇼타로가 삼켜버린 말은 들을 수 없는 아키코가, 감정에 북받혀 목이 메인 채 외쳤다.
"뭐야, 뭐냐고! 그런 소릴 할 기운이 있으면 벌떡 일어나서 괜찮다고 하란 말이야!!“
"볼수록 네가 정말, 따뜻하고…… 재잘재잘 떠드는 게 가끔 귀엽기도, 하고…… 네 곁을, 다른 사람에게 주…… 고 싶지, 않았지만……."
그는 눈꺼풀을 무겁게 내리누르며 일어날 수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떠들 기운이 남아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었다.
"아직도 어린애 같고, 혼자 두고 싶지 않지만…… 넌, 혼자 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하고…… 좋은 사람이야."
그러니 나 같은 하프보일드보다 훨씬, 멀리 갈 수 있을 거야.
"지금 이제 와서 무슨 소리야! 입 다물고 있어! 지, 지혈부터 하면 되나? 어어쩌지!?"
당황하여 손을 덜덜 떠는 아키코를 점점 몸이 가라앉아가는 쇼타로가 시리게 붙잡았다.
"괜찮아."
"뭐가 괜찮아!! 사람들을 울리고 싶지 않다면서, 나를 죽여야 한다며! 왜 쏘지 않았어!? 차라리 네가 나를 쐈으면, 나, 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아키코에게서 터져나온 눈물이 후두둑 쇼타로에게 흘러떨어졌다. 차라리 쇼타로도 방아쇠를 당겼더라면, 원망이라도 할 수 있잖아. 서로 똑같은 짓을 했으니까.
쇼타로는 희미하게 다시 웃어보였다. 이제 얼굴을 가려줄 모자 같은 건 남아있는 줄도 몰랐다.
"다른 사람들이 우는 것도 싫…… 지만, 네가 우는 걸 보는 게…… 가장 싫었는데……."
눈물을 닦아주고 싶어도 손을 더 들어올리기가 힘들었다. 간신히 그녀의 빰에 손이 닿자 어떻게든, 쇼타로는 손가락을 움직였다. 따뜻한 액체가 식어가는 피부를 적시는 기분이 들었다.
이게 마지막이라는 듯이.
"아키코, 나는…… 네가……."
줄이 끊어진 마리오네트처럼, 붙잡은 손의 생명이 사라져버리는 느낌이었다. 몇 번이나 보았던 아키코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의 죽음은 이렇게 찾아와버린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심장을 후벼 파고.
"쇼타로…… 쇼타로!!"
눈을 감은 그를 잡고 흔들어도 소용이 없었다. 사람을 불러왔더라도 조약한 아지트에서 응급처치는 힘들었을 것이다. 설마 처음부터 총에 맞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을까. 이 남자라면 그럴 만했다. 피를 최대한 흘리지 않고 상황을 끝내는 법은 둘이었다. 정부가 이기든가, 우리들이 이기든가. 정부가 이긴다면 우리들의 피만 흐르고 끝이 난다. 우리들이 이긴다면, 함께 해준 시민들이 얼마나 다치고 눈물 흘릴지는 몰라도 끝은 난다. 아키코가 죽으면 정부가 유리해지는 것처럼, 정부의 요인 중 일원인 쇼타로가 사라진다면 승기는 조금이라도 이쪽으로 돌아선다.
설마, 그런 걸 생각했던 건 아니겠지.
"이미…… 울려버렸잖아. 다른 사람은 무슨 다른 사람이야…… 이 멍청이 하프보일드!!"
총성의 진원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헤매던 테루이 류가 그 자리에 도착하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팽개쳐진 두 자루의 권총과, 바닥에 떨어진 모자 하나,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을 남자를 끌어안은 채 오열을 멈추지 못하는 아키코. 그게 테루이가 볼 수 있던 광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