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곧 떠나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사람처럼 생활의 흔적이 남은 물건이 거의 없었다. 필립이 떠나있던 시절에는 정말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제대로 된 유품도 남아있지 않아서, 화이드보드에 묻은 손자국 하나조차 지우지 못했던 나날들. 필립이 돌아왔는데도 여전했다.
필립은 원래, 그런 사람이었으니.
'아버지와 쇼타로의 물건은 저렇게 많은데.'
필립이 머리를 고정하는 집게를 집어들며 아키코는 청소에서 잠시 벗어나서, 필립의 공간에 대해서 생각했다. 최초로 짧은 휴가를 떠나기전에 필립이 말했었다.
"방이란 게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차고의 한 편은 필립의 공간이기는 했지만 방이라고 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었다. 개조를 하기도 마땅치 않고 워낙 돌아다닐 일만 계속 일어나는 사무소다보니 전혀 생각지 않고 있었는데, 당사자인 필립이 말을 꺼내자 쇼타로도 적극 찬성했다.
"그래,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몰라도 언제까지나 리볼 개리랑 한 공간에서 사는 건 좀 그렇지."
"저요! 방이 만들어지면 인테리어는 이 소장님이 하겠습니다!"
"네가 꾸미면 방이 분홍색이 되는 거 아냐?"
"분홍색이 뭐 어때서! 그치, 필립군?"
"색깔에 편견을 가지는 건 나쁜 일이지. 소장님의 안목을 기대해볼까?"
아주, 아주 대단한 일이라고 아키코는 새삼 생각했다. 차고를 개조해서 필립의 방이 생기는 날, 작은 방 안에서 조촐한 파티를 벌이고 집들이처럼 선물이라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 뒤로도 시간이 흐르면 이 탐정 사무소의 모습도 많이 달라져 있겠지, 필립의 방을 포함해서.
그 때쯤에 다시 한 번 청소를 하면서, 그 땐 필립의 흔적이 잔뜩 묻어있는 물건들이 여기저기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필립의 방 안뿐만 아니라, 차고의 구석도 쇼타로의 책상 아래도 사건 파일을 넣어둔 책장 곁에도 좋다.
그렇게 모두의 기억이 쌓인 공간 안에 어떤 모습으로 존재할지 모르는 미래의 자신을 아키코는 상상해보았다.
……조금도 모르겠다. 역시 소장님인가?
버릴 물건과 정리가 덜 된 물건 사이를 걸어나오며 아키코는 잠깐 쉴까 하고 찻잔을 집어들었다. 커피가 나을지 홍차가 나올지 고민하다가, 아키코는 테이블 위에서 와장창하고 드리퍼를 굴러떨어뜨렸다. 아차, 하고 주워들자 오래 쓴 것이라 원래도 그리 상태가 좋지 않았던 것이지만 영 사용하기엔 불안했다.
'청소가 끝나면 새 걸 사오자.'
커피 원두 대신 홍차 티백을 꺼내며 아키코는 뜨거운 물을 끓였다. 둘 중 뭘 마셔도 상관 없다고 생각했던 조금 전과 달리 괜히 고장난 드리퍼에 마음이 가니, 커피가 마시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