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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산이 없는 이에게 비는 유독 강렬한 기억이 되고 만다. 으레 그런 비란 예보도 무시하는 법이다. 인간의 예측이란 어차피 기상 앞에서는 무력할 뿐이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며 히어로 수트를 뒤집어쓴 두 인영이 달린다.


"어디까지 가야하는데!"
"다 왔다."
"그 말 세 번째거든!"


 체력이라면 자신이 있는 히어로도 넘버원 히어로 팔라딘과 함께 달려간다면 힘들 법하다. 이건 뭐 바윗덩어리라도 되는지. 아니다, 바윗덩어리도 오랜 세월 비를 맞으면 어딘가 깎일텐데 이 히어로는 그런 기색 하나 없이 빗속을 달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이런 꼴로 달리고 있는 것에 별 이유는 없다. 늘 그렇듯이 도쿄를 위기에서 지켜내는 업무를 수행하고는 귀찮은 일들(이것도 늘 그렇듯이 매스컴이라든가 히어로 매니아들이라든가)을 피해 잠깐 몸을 숨겼더니, 이제 슬슬 다른 곳으로 가볼까 하는 시점에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비를 맞는 것쯤은 솔직히 아무래도 상관 없는 몸뚱이들이지만 우수한 성능의 히어로 수트마저 침범할 정도로 비가 거세다. 특히 수트의 형태가 머리를 어느 정도 드러내고 있는 팔라딘의 경우, 얼굴이 빗물에 젖어 엉망이 될 법도 했다. 그런 주제에 평정심을 유지하며 달리고 있는 모습이 카게야 아카리에겐 얄미울 지경이었다.
 근처에 내 휴식용 세이프 하우스가 있다, 거기서 비를 피해도 돼. 그 말을 믿고 뛰었더니 '근처'라는 게 히어로에게도 다소 멀었을 뿐이지. 카게야 아카리는 마스크 안으로 투덜투덜 잔소리를 퍼부었고 팔라딘은 그걸 들으면서 묵묵히 길을 안내하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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