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있는 가게들은 방범창을 강화하고 비상전화를 걸 수 있는 장치를 계산대 가까운 곳에 두었다. 원래는 치안이 아주 좋은 도시였기 때문에 경찰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제는 대비할 틈도 없이 치안이 나빠져버려 이곳으로 오고 싶어하는 경찰이 있을 리가 없을 지경이었다.
발을 멈추고 느긋하게 거리 공연을 구경할 사람들, 두 다리로 딛고 서서 기술을 뽐낼 수 있는 무대, 안심하고 거리를 다닐 수 있는 여유로움, 이런 것을 모두 포용하는 이 도시라는 공간이 타의와 자의에 의해 조금씩 사라져갔다.
무대도 관객도 중계도 유행하는 방송도 모두 사라져간다. 제대로 유지되고 있는 팀은 몇 되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팀들도 이제는 댄스 팀이 아니라 스트리트 갱으로 돌아가고 있을 지경이었다.
해체된 팀은 안타깝지만 두 번 다시 볼 일이 없다. 세대를 물려준 팀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그나마 가장 굳건하게 남아있는 팀 가이무와 팀 바론을 중심으로 정보를 공유하거나 공연을 계획하며 잘 지내고 있었다. 가장 나쁜 경우는 갱에 가까워져버린 팀들, 그 중에는 언젠가 거리에서 댄스 배틀을 했던 사람들도 분명 섞여있었다. 잭은 최근에 이 자와메를 뛰어다니며 그런 이들의 상해와 절도를 목격하곤 했다. 몇 번은 막았고 몇 번은 그냥 지켜보아야 했다. 가장 최근의 '검은 보리수' 사건에 휘말려 돌아오지 못하게 된 이들도 있었다.
문득 오늘의 댄스 연습을 빠뜨렸다는 사실을 깨달은 잭은 반도씨 몰래 동전 몇 개를 내려놓고는 가게를 나와 한숨을 쉬었다. 한번 부서지려고 했던 바론을 재건하랴 자와메에서 아머드 라이더로 드문드문 뛰어다니랴, 행동할 몸이 하나론 모자랐다. 이러다간 솜씨가 녹슬었다고 남 탓할 처지가 아니었다.
허리춤에 매달아놓은 록시드를 잠깐 빼서 잠자리 옆에 내려놓는다. 이 자와메에서 록시드는 여전히 힘의 상징이었다. 잭이 누군가의 앞에서 아머드 라이더로 변신할 때마다 그렇게 규정하는 시선이 느껴지곤 했다.
그런 것만이 힘은 아니다. 잭은 카이토가 하던 의미 모를 말들을 얼마 전부터 짚어낼 수 있게 되었다. 주먹으로 팀을 평정하고 바론을 세운 남자가 그런 말을 하니 다들 영문을 모를 수밖에 없었지. 쿠몬 카이토는 댄스가 힘이라고 했다. 대부분의 팀원은 아마, 바론이 그만큼 최고라는 뜻으로 알아들었던 때의 일이었다.
힘은 인간을 바꾸고 세계를 변혁한다. 자와메에서 벨트를 손에 쥐었던 인간들이 어떠했던가. 잭은 매일 가지고 다니는 벨트를 잠깐 몸에서 떼어놓았다. 지금은 이걸로라도 자와메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노력하는 범위가 이것만은 아니다. 잭은 팀 바론을 관두지 않았다. 팀원들이 바라보고 있어서나, 페코가 아직 불안한 눈치여서는 아니었다. 잭은 이번 기회에 그 무언가가 가진 힘을 직시하고 싶었다.
네오 바론에는 사람이 모였다, 잭이 상상했던 것보다 꽤나 많이.
슈라에게는 이 불안정한 자와메에 미치는 나름의 카리스마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근원은 바론이라는 이름을 내걸은 힘이었다. 네오 바론 따위의 이름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아자미의 부탁과 페코의 문제를 떠나서 잭이 자와메로 돌아오면서 가진 감정은 조금 달라졌을 터였다.
피곤해진 잭은 약간의 배고픔도 무시한 채 드러누웠다. 생각해보니 저녁 즈음에 파르페 말고 제대로 먹은 게 별로 없었다.
자와메에 통용되는 바론이라는 이름의 무게가 이렇게 될 줄, 카이토는 생각해본 적 있을까. 잭은 아직 그 이름을 벗지 않았다. 뉴욕에서 바로 돌아온 행동이 잭이 아직 누구보다도 바론의 일원임을 증명했다.
카이토 때문이 아니다.
바론의 이름을 짊어지고, 주어지는 시선과 맞닥뜨려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어서다. 바론이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의미를 알아가고 있어서다. 바론이 이 도시에서 거머쥐었던 힘의 형태를 깨달아서다.